대학사계

미국에 공부하러 떠날 무렵의 나는 매우 불건전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딱히 병이 있었다기보다는 보잘 것 없는 마른 몸매, 몇 시간만 의자에 앉아있어도 노인처럼 쑤시는 허리, 게다가 조금만 잘못 먹어도 토하기 일쑤인 예민한 위장이 내 건강 상태를 상징했다. 또 감기하고는 왜 그리 잘 사귀는지, 아무튼 내가 여자라면 신랑감으로는 그다지 고려하고 싶지 않은 체질이었다.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번 세게 먹으면 그 다음 날은 골골하며 기어 다니는 약골이니 밤을 새워 공부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버거운 주문이었다.

박사과정 입학 후 처음 몇 개월, 나는 아무리 내 스스로를 뜯어보아도 남들을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동기생 25명 모두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한 가락씩 하는 친구들인지라 이들을 머리로 압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그 역이 성립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남들처럼 한국에서 석사 정도는 하면서 충분히 선행 학습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군대 생활을 하느라 학부 시절에 배웠던 알량한 경제학 지식마저도 까먹은 지 오래였다. 이래저래 불안한 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서양 친구들의 가공할 체력이었다. 시험 때면 하루가 아니라 아예 며칠씩 잠을 안자는 것이었다. 저런 짐승들이 있나!

그러던 어느 날 또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며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같은 기숙사에 사는 대만 학생이 다가와 나의 빈약한 가슴을 힐끗 쳐다보며 자랑을 늘어 놓았다. 자기는 수영을 해서 감기가 안 걸린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상체가 역삼각형으로 잘 짜인 것도 다 수영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수학을 전공하던 이 학생, 항상 진지하고 똑똑해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아무리 쳐다봐도 반할만한 가슴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도 이 친구에 대해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몸통이 아니라 머리가 정확한 역삼각형 형태였다는 것이다.

수영? 이것 한번 해볼까. 어차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정도로 지쳐있던 상태라 그 친구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나의 수영시간은 정확히 1시간 5분이었다. 수영장까지 가서 옷 갈아입고 준비운동 하는데 30분, 수영하고 나와 샤워하고 기숙사에 돌아오는데 30분, 그리고 수영시간은 5분이었다. 20미터 정도의 레인을 한번 갔다 잠시 쉬고 돌아오면 끝이다. 컨디션 좋은 날은 한번 다시 간다. 솔직히 의지의 테스트였지 수영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이 과정을 몇 개월 반복하면서 나의 수영 시간은 조금씩 늘어갔다. 더불어 나의 자신감 지수도 올라갔다. 요즘 난 폼은 어떨지 모르지만 물 위에 한 시간쯤은 우습게 떠 있는다. 몇십 미터를 가자미처럼 수영장 바닥을 누비며 잠수할 수도 있다.

어쨌든 수영을 배운 것은 여러 의미에서 내 인생의 큰 전기가 되었다. 역삼각형 대만 친구와의 가슴살 대결에서 패배한 설움에 시작한 수영이 내 인생을 확 바꿀 계기가 됐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 운동은 공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맘 편하게 나 자신을 다독거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나아가 처지기만 하던 내 공부에 모멘텀을 가져다준 기회의 여신이기도 했다.

수영은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피부가 물에 잠겨 폐 만으로 호흡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니 자연 심폐기능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심호흡을 강요당하다 보면 산소 공급이 많아진다. 그래서 수영 후에는 유난히 머리가 맑아진다. 나는 수영 시간을 오후 4시에서 5시사이로 잡았다. 이것이 박사과정시절 나의 승부수였다. 수영을 한 뒤 피자 한 조각같이 허기를 면할 정도의 가벼운 간식을 하고 3시간 정도를 집중해 공부했다. 5시에서 8시 사이에는 다른 학생들이 저녁 먹으러 갈 시간이다. 주변에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저절로 나만의 시간이 마련된다. 8시경에 저녁을 먹는데 그 이후의 시간은 최악의 경우 그냥 놀아도 공부 시간 경쟁에서 손해 볼 것이 없다. 이미 당겨서 저녁 공부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경우 오히려 공부가 더 잘 되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남들보다 매일 2~3시간은 더 공부할 수 있었다.

보통 늦은 오후 시간은 책상머리에 버티고 있어도 하루의 피로가 쌓여 생산성이 높지 않다.  억지로 시간을 때우다 6시나 7시경에 저녁을 먹게 되면 배가 고파 배터지게 먹을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그 후 한 두 시간은 능률이 오르기 힘들다. 게다가 이처럼 남들과 비슷한 사이클로 시간을 쓰다 보면 자연 이런저런 유혹이 따르기 쉽다. 영화를 보러 가자, 맥주 한 잔만 하자는 등의 친구들 제의를 뿌리치고 혼자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은 수도자의 고행에 맞먹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유혹이란 사전적으로 길목을 차단해야지 일단 찾아온 다음에는 거절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아무튼 내가 택한 공부 방식은 ‘스스로를 외롭게 그러나 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매개는 수영이었다. 내가 전략적으로 택한 오후5시에서 8시까지의 세 시간은 정말 한적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남들에게는 적당히 피로가 몰려 능률이 떨어지는 이 무렵이 나에게는 역설적으로 가장 머리가 맑고 집중하기 쉬운 시간대가 되었다. 수영 덕분에 온 몸에 산소가 가득한 데다 누가 방해할 사람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역전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머리는 비긴다 치고, 미리 해온 공부 밑천이 딸리는 처지에서 체력까지 밀린다면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수영이 나를 다르게 만들었다. 매일 남들보다 세 시간 더, 그것도 머리가 맑은 세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대단한 무기였다. 박사과정은 장기전이므로 하루 이틀 욱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뭔가 승부를 걸 수 있는 자신만의 비결이 있어야 한다. 드디어 나도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남들보다 머리가 떨어져도 좋다. 사전 지식이 부족해도 좋다. 대신 모자라는 만큼 몸으로 때우겠다." 몸으로 때우다니! 25년의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내가 몸으로 남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처음 있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것도 체력 좋은 서양 친구들 숲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수영을 배운 이후 나는 어지간해서는 감기를 앓지 않는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찬물에서 삼십 분 정도 운동을 하면 바이러스가 그대로 삭제된다. 몸을 아무리 혹사해도 허리가 쑤시는 일이 없다. 수영으로 운동의 틀을 잡은 뒤에는 근육운동을 추가해 가슴살도 단단해졌다. 학생시절에는 힘쓰는 부분이라면 지레 포기하는 지진아였지만 이제는 솔직히 머리보다 몸싸움이 자신 있을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도 직업이 공부라고 하면 핼쑥한 얼굴과 나약한 몸매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체력이 달리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 체력을 단련할 시설이 많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마음 먹기가 잘 안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운동을 몸으로만 한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몸은 마음을 따라갈 뿐이다. 운동은 처음 3개월 정도가 고비다. 이 기간 동안에는 별 진전을 느끼기 힘들다. 오로지 뚝심으로 버텨야 하니 운동으로 몸이 가뿐해지기는커녕 더 피곤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운동이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정신이 육체를 받쳐주어야 한다. 주변을 보면 운동을 시작했다가 얼마 못 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몸이 못 따라가서가 아니라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다. 처음부터 운동을 삶의 높은 우선순위로 삼고 시작해야 뭔가 이룰 수 있다. 나도 예전에 그렇게 수영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운동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운동은 남에게 방해받지 않는 소중한 시간대를 골라 내 삶의 1차적인 목표라 생각하며 덤벼야 한다. 주변에서 보면 다른 중요한 일을 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운동에 할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정신자세로는 한 달도 못 가 포기하게 된다. 일단 시작한 뒤에는 일종의 신념 투쟁하는 방식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몸이 얼마나 짜였는지,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 하는 것들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내가 봐도 나 자신이 참 미련하다고 느낄 정도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느낄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 잔잔한 행복인 것을. 운동기구가 친구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둘째, 운동은 절대로 혼자서 해야 한다. 테니스나 스쿼시와 같이 둘이 하는 운동은 레저로는 적합하지만 내가 말하는 공부 비결의 일부가 되기는 어렵다. 헬스나 수영과 같이 혼자 하는 운동의 경우라도 친구와 붙어 다니는 것은 금물이다. 서로 상대의 가녀린 팔뚝과 도톰한 아랫배를 쳐다보며 열등감을 달랠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의 나약한 의지로는 한 달을 넘기기도 힘들다. 또 설사 운동까지는 맘이 맞아 열심히 함께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이 문제다. 운동 후 어울려 떡볶이를 사 먹거나 생맥주를 마시게 되면 나만의 공부 시간을 갖기 힘들다. 물론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마음껏 친하게 어울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체육관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이후 이어지는 황금 같은 몇 시간을 아껴야 한다. 공부든 운동이든 성공의 길은 외로운 도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셋째, 운동의 종목은 혼자서 매일 할 수 있는 것으로 택해야 한다. 자연, 수영이나 달리기가 떠오를 것이다. 달리기나 등산은 나름대로 완벽한 운동이지만 날씨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 걸린다. 운동이 충분히 궤도에 올라 생활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야 별 상관없지만, 몸보다는 정신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초보자에겐 날씨 변명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수영이나 헬스가 좋을 수 있다. 수영은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해도 살 수 있다는 상상에서 오는 부대효과가 있고, 헬스는 두세 달쯤 후부터 솟아오르는 알통을 만지며 혼자 감격스러워하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

이상의 운동비결은 곧 공부비결이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면 맑은 정신의 내 시간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다. 운동과 공부 시간을 남들과 다르게 잡으라는 것은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어 주라는 의미이다. 공부의 능률은 결국 시간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는 요즘의 나는 학생시절처럼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있는 나만의 시간을 아침 5시에서 8시 사이로 잡고 있다. 그런데 자명종의 힘만으로는 5시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대신 우리 집 강아지 팔팔이가 새벽이면 내 다리를 물어뜯으며 빨리 산책 나가자고 조른다. 새벽 거리에는 팔팔이가 좋아하는 흰색 똥개가 늘 기다리고 있다 (00.05.27).

(*이 글은 20여 년 전에 쓴 대학사계 첫 글이다. 팔팔이는 오래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그 뒤 냉면사리에서 이름을 따온 사리가 우리 가족과 함께 했고, 지금은 까만 푸들 토리와 토리의 쌍둥이 딸 곱단이(단이)와 강냉이(냉이)가 우리 집 개 식구다.)